교회 속 무속신앙  – 서재생

교회 속 무속신앙 – 서재생

시편기자는 시편146;1-2에서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평생”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빼오디”로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이란 뜻입니다. 즉살아 있는 동안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살게 다는 신념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언젠가 필자는 모 교회 노인대학 강사로 초청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의 시간을 기다리는 중에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노인대학에서 성주풀이 민요를 가르치는 것을 본것입니다.

성주풀이는 가신신앙에 속한 성주신을 축원하는 무가(무당이 굿할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가신신앙이란 가택의  요소마다 신이 있어서 집안을 보살펴 주는 것이라 믿고 이들 신에게 정기적인 의례를 올리는 것 가신신앙입니다.

한국의 무속신앙의 외형적 특징은 노래(무가)와 춤으로써 신을 섬긴다는데 있습니다. 무속신앙에서 노래와 춤은 신과 신접하는(영통하는) 길입니다. 그 목적은 신의 힘을 빌어서 재액을 물리치고 복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피 값으로 세우신 몸입니다. 제가 강의 하고자 방문했던 노인대학도 교회 안에 속한 기관 이였을 것입니다. 아무리 민요를배우는 시간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때에는  교육을 담당한 지도자가 민요곡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국의 민요에는 무속신앙인 굿의 제의 무가에서 발전한 민요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민요를 불러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무속신앙적인 무가요소가 없는지 깊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국 민요라고 알고 있는 “창부타령”, “성주풀이”, “대감타령”, “배뱅이타령”, “회심곡” “장님타령”등은 전부 무속신앙의 무가입니다. 한국 무속신앙의 굿판의 무가가락에는 해학과 익실과 만담에 한 바탕 웃다가, 어느 순간에 무당의 슬픈무가가락에 함께 우는 것이 굿판 모습입니다. 볼거리와 소일거리가 적었던 옛날에는 굿판이 벌어 지만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그 굿판에 함께 울고, 함께 웃었습니다. 그러한 문화 속에서 한국 기독교가 부흥 발전하여 온 결과, 오늘의 부흥회는 무속신앙의 굿판을 연상케 하는 그릇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복음적인 십자가의 구속의 메시지보다 무속신앙 굿판 같이 해학과 익살에 능한 만담을 방불케 하는 입담 있어야 능력 있는 부흥사로 불립니다. 굿판의 빠른장단에 맞춘 무가에서 귀신이 공수되듯이 빠른 박자로 손뼉치며 찬송을 함께 하무로서 앞뒤로 넘어지는 부흥회의 광경은 굿판에서 신 내림을 연상케 합니다. 한국 무속신앙의 종교적 의례인 굿판은 귀신이 즐거우니 사람도 따라 함께 즐겁고, 귀신의 한(恨 )에 의해서 슬플 때는 함께 슬퍼 웁니다.

그러므로 굿판에는 술과 노래와 춤으로 한껏 홍이 오르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같이 어울러 한바탕 흥이 벌어지는 것이 무가의 특징입니다. 한국 문화에서 “신 난다”, “신명 난다”에서 ‘신’은 귀신 혼령을 의미 합니다.

필자가 어느 교회에서 마지막 밤부흥회를 끝내고 사택 숙소에 있는데, 예배당에서 들려오는 빠른 북소리에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숙소를 나와 예배당에 가 보았습니다. 마치 뒤풀이 굿하듯이 신명이 난 성도들이 천국 춤이라고 하는 이상야릇한 동작으로 몸을  흔들고, 서로 붙잡고 방언을 하며 통변하고, 입신하는 광경이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러한 행위들이 무속신앙의 굿판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25년 전 어느 시골교회 부흥집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한국 무속신앙의 특징 중 하나가 무가(巫歌)입니다. 무당은 노래하며 춤추는 가운데 신령과 만나(신접) 교통할 수 있다고 믿어져 왔습니다.  손뼉을 치고 신나게  노래를부르며 흥이 신명으로, 황홀경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무속신앙에서 무가의 기능이 굿판을 좌우합니다. 이런 현상이 한국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서, 흥겨움과 때로는 통한의 슬픔이 교차해야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필자의 교회에서는 주일 오후 2시 예배에 250여명의 노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 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 왜에는 한 번도 민요나 이방들이 부르는 노래는 부르지 않습니다.

무당은 굿이라는 특별한 종교 행위의 주관자로서 주체적 행위를 하게 됩니다. 굿이란 산 자와 죽은 자와 조화를 위한 종교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굿은 청혼(請魂) 행위를 통하여 문제의 원인이 되는 신령들을 불러내는 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불러낸 신이 내리게 되면 경쾌한 음악과 춤으로 그를 즐겁게 해줍니다. 굿이 진행되는 과정에 무당들은 내린 신에게 빙의(憑依)되어 문재 의뢰자들에게 공수(空授)를 내리기도 합니다.

즉 무당들은 인간과 신령의 중재자로서 무업을 하는 자입니다. 신접에는 춤과 노래(무가) 필수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무가인 성주풀이를 가르치는 것은 교회 안에 귀신의 공수를 내리는 행위로 보아야 합니다. 필자는 한국 기독교를 병들게 하고 혼탁하게 하는 샤머니즘의 부정적인 정서를 고찰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진리의 말씀 위에 온전히 서서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한국교회가 무속신앙의 무가를 교회 안에 가르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무가는 노래하며 춤추는 가운데 신령과 만나 교통할 수 있다고 믿는 무속신앙입니다.

물론 성령이 역사하면 은혜가 충만하여 박수치고, 춤을 출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내재 없이도 빠른 박수치며 노래와 춤을 추면 성령이 역사란다는 것은 이것 또한 무속신앙의 무가와 굿판의 춤에서 온 영향이라고 지적 않을 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갈라디아서1장6-8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더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가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다른 복음을 따라가고 있다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샤머니즘적요소인 무가를타파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동안 목회현장에서 교회의 부흥이라는 명목을 빙자해서 얼마나 이러한 많은 현상들을 보았고 또한 지금도 보고 있는지 또한 모릅니다. 우리의 잘못된 목회 현장에서의 이러한 무속적인 요소들을 성경적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출처]월간 “성경과 소금” 기고 글서울대현교회 / 서재생목사에서 발췌

[14년간 불교 승려였던 서재생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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