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뱀의 의미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사람들 위에 쳐든 같이 인자도 나무 위에 높이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4, 15

어렸을 때, 십계명 영화를 보며 모세역의 찰톤 헤스턴이 징그러운 뱀을 땅에 던지자 꿈틀거리던 뱀이 순식간에 굳어져 뱀 형상의 구리가 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전에는 요한복음 3장 14-15 절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은 왜 하필 악의 상징인 뱀을 자신에게 비유한 것일까?  궁금 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이집트에서 노예 신세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해 줬어도, 끊임없이 불평하는 그들을 불뱀에 물려 죽게하려하신 하나님.  그들을 위해 모세가 기도하자, 뱀 하나를 땅에 던져라.  구리뱀으로 변했을 때, 장대 매달아 들어올려라.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를 바라보게 하라 명하셨고, 모세가 그렇게 전하자, 죽어가던 사람들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 것을 올려다보고 나았죠.

그게 구리뱀 자체에 신령한 힘이 있는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 나았는지 이해 못해도, 하라는 대로 순종하니까 났게 해주신 거구나.  예수님도 그렇게 독사, 즉 악한 영에 물려 죄로 부패하고 죽어가는 우리가 바라보고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주셨구나.

그 바로 다음 귀절인,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어머니가 아버지 묘비에 넣자고 하셨을 때, 저는 너무 흔하고 사람들이 이미 다 아는 귀절이니 다른 것을 넣자고 했어요.  오늘 아침 16절 바로 전에 나오는 14, 15절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고 나서, 반대했던 저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어요.

하나님은 살아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악의 상징으로 만드신 독사를 순식간에 생명없는 물체로 변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셨음을.  그 능력의 상징인 구리뱀.  이해 못해도 그냥 바라봐라.  죽어가는 사람의 다급함으로 바라봐라.  내가 그 구리뱀이 되겠다.  죽어가는 너희들이 보고 살 수 있도록.  그리고 나서 하신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사 외아들을 보내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목사였던 저에게는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귀절이라, 그리고 어쩌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Too good to be true (너무 좋아서 믿어지지 않는)라, 예배당 십자가 처럼, 별 생각없이 보고 지나쳐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새삼 이 한 귀절이,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할 진리이며, 굿뉴스임을 알겠어요.  십자가에 처형되는 어려운 일은 당신이 하고, 그렇게 쉬운 일만을 우리 몫으로 남겨두셨음을요.  복음의 진수인 요한복음 3장 16절을 어머니의 뜻대로 아버지 묘비에 새겼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를 바라보고 마음에 간직해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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