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 일기 – 다단계회사 컨퍼런스 통역

통역 일기 – 다단계회사 컨퍼런스 통역

오래 전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의 통역을 몇 번해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다단계 쪽 통역은 안하겠다고 결심하고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거절해왔는데, 국제회의 동시통역 파트너인 친구가 함께 하자고 해서 유명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의 컨퍼런스 통역 의뢰를 수락했다.

동시통역 은 내가 사랑하는 일이고 특히 국제회의 동시통역은 긴장되면서도 새로운 정보를 배우고 전달하는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정말 아니었다. 이름은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 불러도 사람 장사하는 피라미드가 맞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살 빼는 약, 에너지 주는 약, 노화방지, 성욕/성기능 상승제, 디톡스 차 등, 효과가 이 삼일 안에 즉시 나타난다고 했다. 이 회사에서 파는 제품들을 먹고 마시고 바르면 영생불로할 것 같이 말한다.

옛날 한국 시장에서 본 만병통치 뱀가루 약장수와 똑같다. 알 약 하나에 샐러드 열 접시 분량의 영양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왜 샐러드 열 접시를 한꺼번에 먹어야 하는 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 생각에 문제는 여기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 신도들 처럼 상위 1%를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생각과 열정을 “부자”가 된다는 환상의 제단에 바치고 착취되는 노예 신세로 전락한다는데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이 “사업”에 합류 시켜야 한다고 한다. 가족과 친구들도 함께 성공하도록 하기위해.

흥분되는 음악이 둥둥 울리고, 성경 귀절이 자주 인용되고 박수와 함성… 한 가족이라고 모두 웃으며 끌어안고 춤추는 신나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발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한국 참가자들은 큰 태극기를 들고와 자랑스럽게 휘두른다.

애국심, 가족애, 성공, 돈으로 부터의 자유, 신앙, 꿈의 성취, 자신감의 회복 등, 인간이 갈망하는 모든 것이 이 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다 성취될 거 같이 말한다.

어제 나는 정말 간절히 거기에서 나오고 싶었다. 통역사의 역할이 나의 의도를 섞지 않고 투명하게 말만 전달하는 것이지만, 사람 착취하는 사업의 도구로 쓰이지는 말아야지. 이제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나를 고용한 회사는, 약속 시간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키고 페이는 더 적고 마지막 날에 매일 약속한 시간 보다 더 늦게 일을 시키고 마지막날 호텔 비를 내 줄 수 없다고 했다.

보통 동시통역 일을 하면 높은 보수와 함께 최고급 호텔에서 식사 등 모든 편의가 제공되는 것이 기본이다. 회의 참석자들도 물론. 그런데 이번 일은 물 한 병만 제공되고 통역사들에게 필수인 커피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회의 참석자들도 마찬가지. 내셔날 디렉터 급 이상만 따로 점심 제공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한 형제라고 외치면서 어찌 타 주 또는 먼 나라에서 비행기 타고 온 사람들에게 조차 병물 하나 제공이 않되는 지.

그런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어찌 믿고 사용할 수가 있겠는가. 성분 표시도 안되있는데.

국제 회의는 보통 오전 9시 이후에 시작해서 오후 4 시면 끝나는데 밤 열한 시 이후까지 일하고 다음 날 오전 9시에 시작되기로 한걸 8시까지 나와서 4시면 끝난다고 약속하고 6시까지 일을 시켰다. 내 파트너 통역사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일찍 가야했고 혼자서 했다.

마지막 날 집까지 5시간 이상 운전을 하고 가기에는 너무 늦게 끝날 거 같아서, 4성 호텔비를 부담하지 않으려 새벽 4시에 일어나 차를 몰고 호텔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새우잠을 잔 후 몹시 피곤한 상태로 일하러 갔다.

일하기 전 그리고 일하면서 – 기도를 하니 첫 날 보다 더 기운이 나고 일을 끝까지 잘 할 수 있었다. 좋으신 하나님. 일을 수락하기 전 먼저 기도하지 않고 전에 다짐했던 약속도 깨고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나의 기도를 그래도 들어주셨다.

음식값과 주차비가 터무니 없이 비싼 다운타운의 호텔에서 자주 이용하는 레지던스 인으로 옮기고 나니 집에 돌아온 것 처럼 편안하다. 샤워하고 곧바로 침대에 쓰러져 아침까지 잤다.

이 것도 훈련이겠지. 나는 일 끝나면 자유이지만, 회의장에 한 줌의 희망을 품고 찾아가 이용당할 가난한 사람들이 안됐다. 진실된 기독교인이 그러한 열정과 기쁨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포용한다면. 정직하게 돈을 벌고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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