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흑백사진을 놓고, 흰색, 갈색과 파란색 물감을 섞어서 그려 보았다. 나보다 어린, 딸 같은 엄마가 나를 안고있다
엄마의 손가락 위에 얹어진 나의 손가락이 아기새처럼 세상을 향해 머리를 조금 내밀고 있다.
나를 빨래판 위에 앉히고 빛이 적절히 우리 위에 비치도록 자세와 각도를 이리저리 지휘하셨을 아빠
이제보니 알 것같다. 나의 부모가 얼마나 어렸었는지를,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도 모르는 어린 사람들이었음을.
행복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카메라 렌즈 뒤에서 우리 모녀를 주시하며 만들어낸 아빠의 작품. 지금도 기억나는 갈색 케이스의 리코 카메라로 찍으셨겠지. 여러가지 수동 조작을 하셨을 연출자의 멋진 손.
이제 별 처럼 먼 시공간에 떨어져 있는 우리
함께한 따뜻한 순간을 시간의 유리병에 담아 간직한 아버지 덕분에
엄마의 손에 내 손이 겹쳐지고
아빠의 작품에 내 작품이 겹쳐지는 그런 행복한 만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