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미완성 교향곡

오늘은 7월7일.  3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이다. 아버지는 숫자7을 좋아하셨다.  7은 럭키세븐 즉 운좋은 숫자가 아니라 성경에 여러번 등장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숫자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즐겨 연주하시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머리에 떠오른다.  연미복을 입고 집중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시던 멋진 옆 모습.

재능과 성실함을 갖추고 핸섬하기까지 했던 아버지.  일제시대 때 용감하게 싸우셨던 아버지.  그 옛날에 나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주시고, 한문으로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출생신고 접수를 거부하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당신은 중국사람이오 한국사람이오?  하고 따져서 등록시키셨다. 내 이름 끝자인 솜을 고어로 세모점 그리고 네모로 쓰고 그 뜻은 사랑이라고 종종 흰 종이에 직접 써서 보여주곤 하셨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신 것은 아니다. 급하고 까다로운 성격에 한 때는 술을 많이 드시고 간경화로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살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기도 하셨다.

한국에서는 대학 교수로 학장으로 어느 정도 성취를 하셨지만 미국에서는 다른 이민1세대들 처럼, 언어장벽 등 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겪으셨다.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그 분의 삶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식들에게 당신 자신보다 더 높고 완벽한 것을 바라보도록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겉에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중심을 보고 판단하신다.”

어릴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 단순한 말이 지금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여 나를 돌아보게하고, 그 분의 실재를 상기시켜주는 신앙의 기반이 되었다.  

아버지는 의사인 사촌 오빠에게서 까지 가망없다는 얘기를 듣고, 술을 끊고 기도하셨다.  서울대 병원에서 포기한 아버지는 한의학과 양의학을 함께 적용하여 치료한다는 경희대병원을 찾아가셨고 그 곳에서 독실한 선교사이시기도 했던 닥터 함을 만나 병을 고치시고 90세가 넘도록 사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선교단 소속으로 여러 양로원을 방문하여 찬송가를 연주하고 가르치셨다.  

젊을 때 거친 다이아몬드 같던 아버지는 항상 머리맡에 사진을 두고 그리워하고 존경한 목사였던 당신의 아버지와 그 분을 통해 알게된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며 아침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며 자신의 삶을 조금씩 수정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완벽과는 거리가 먼 이 딸도 그대로 따라하려는 삶을 살고 있다.  비록 죽는 날까지 미완성일지라도 죽음 너머에서 완성될 것이라고 한 예수님의 언약을 믿으며 사랑하는 내 아버지와의 재회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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