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욥기 41장을 읽었다. 40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동물들을 하나하나 소개한 후, 41장에서 마지막으로 괴물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레비아단(Leviathan)이라는 바닷 속 괴물을 소개하다 후반부에서 그 것이 용, 즉 사탄으로 변한다. 그 것도 창조된 것인데,두가지 큰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극도의 교만함과, 하나님만이 꺾을 수 있는 대단한 파워.
용(龍) 하면 생각나는 사람. 대학 입학 후 첫 미팅에서 만나 몇 년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끝내 헤어진 남자친구다. 그 친구 이름자에 용이 포함되는데, 그는 몹시 핸섬하고, 머리도 좋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쿨했다. 글씨체 까지도.
나는 그를 용이라고 부르며 머릿속에서 실제 용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악한 용이 아니라, 파워풀하고 (최소한 나에 대해 ㅠㅠ) 신비로운 존재로. 사실, 나에 대해서는 좀 악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나를 만나면서 다른 여자들도 만났으니까.
그래서 나도 오기로 다른 남자들과 만나기도 했지만, 잘해주는 남자들 보다는 냉정한 그에게 항상 더 마음이 끌렸다. 내가 좋아하는 그는 나한테 잘해줬다 갑자기 냉정해졌다 변덕이 심했고,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나를 죽자고 쫓아다니기도 했다. 아, 그때의 마음 고생이란! 그 때를 생각을 하면, 젊음이 갔어도 연애 걱정 안하고 사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오늘 아침 욥기를 읽으며, 혹시 하나님이 그를 나에게 교육 목적으로 보내 주셨던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외모에 약한 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많은 것들에 현혹되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그래도 나의 신앙이 교정기 역할을 해주어 그런 나를 정당화하기 보다는 나를 다른 사람 위에 두는 교만이 죄임을 가르쳐줬다.
교만, 즉 프라이드가 인간이 가진 큰 문제임을 나이가 들 수록 더 절감한다.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 나 자신을 봐도 그렇고. 그래서 나는 정신이 확 들도록 확실히 짚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하다.
사단은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자들의 왕이 되느니라. 욥기 41장34절
나는 아직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교만함과 계속 싸울 것이다. 나보다 더 교만한 용, 즉 사탄의 지배를 받기 원하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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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