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에서 다루려는 주제는 전통적으로 ‘묵시’ 또는 마지막 때에 관한 계시이다. 성경에는 마지막 기간을 “주의 날”로 언급하고 있다. 성경 학자들은 이 때를 ‘대환란’의 때라고 부른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예언된 사건들이 실제로 이미 서기 1세기에 다 발생하였다고 본다. 그러한 관점을 과거주의(preterism)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예언들 중에 여러 면들이 아직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발생하고 있다고 믿는다. 과거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이 과에서 내가 제시하는 증거들을 점검해 보길 바란다.
마지막 때 동안에 그리스도인들이 ‘적그리스도’라고 언급하는 존재가 등장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인물을 “멸망의 아들”과 “불법의 사람”이라고 언급한다 (살후 2:3). 적그리스도라는 용어가 가진 의미는 ‘대신’ 또는 ‘대항’ 이라는 뜻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사탄은 그리스도로 가장하길 원하며 성전에서 그의 자리를 찬탈하길 원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참람된 말을 할 것이다.
때가 차면, 사탄은 사람의 형태로 올 것이며 그 사람은 사탄에게 철저하고 완전하게 순복할 것이다. 이 사람은 (적그리스도) 전 세계를 하나님과 주의 계획을 모독하는 모조 영적 시스템 하에서 세상을 연합시킬 것이다. 계시록 13:5-6절을 보자.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계 13:5-6).
궁극적으로 이 사기꾼은 7년 대환난의 뜻에 실제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8-10절을 보자.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살후 2:8-10).
이 속이는 자와 그의 거짓 프로그램이 멸망한 후에 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셔서 주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실 것이며 천년 왕국으로 불리는 통치를 시작할 것이다. 그 때는 이 땅에서 참된 안식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때와 시기
이러한 예언적 경고의 빛으로 볼 때 뉴에이지 운동은 매우 특이한 의미를 갖는다. 사도 바울은 주의 날을 “때와 시기”로 말하였다.
바울은 구약 다니엘을 참조하고 있다. 느브갓네살 왕이 바벨론 왕국으로 시작하여 메대-바사, 그리스, 로마와 열개의 미래 왕국들로 이어지는 이방 왕국에 관한 꿈을 꾸었다. 다니엘은 이 꿈을 해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시대를 바꾸신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때와 시기”를 정하신다고 말한다.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단 2:20-22).
사도행전 1장 6절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께 하나님께서 그때 주의 나라를 회복할 것인지를 물었다. (천년 왕국을 도래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때 주님은 7절에서 답변하시길,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라고 하셨다. 이 표현은 시대가 바뀌는 것과 관련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이 말한 데살로니가 5:1-6절을 살펴보자.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살전 5:1-6).
바울이 말하는 바는 이 시대의 끝이 밤에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치 않게 임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두 그룹을 비교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4). 이 의미는 그리스도 안의 신자들은 ‘그 날’을 준비할 수 있는 정보가 주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계속 말하길,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살전 5:5)라고 한다. 빛 가운데서 걷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앞에는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다. 바울은 그 날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영적 잠과 술취함을 경고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살전 5:6). “정신을 차린다”는 의미는 경계를 하며 의식하고 있으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서 경계를 하고 깨어 의식을 가지라고 한다면 이 말은 뭔가를 주의하라는 뜻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의 경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바울이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 날이 언제 임할지를 미리 경고하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오리라
나는 연구를 하는 도중 바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면서 너무 놀라게 되었다. 성경은 때와 시기의 변화가 정말로 가까울 때 그것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표지를 알려주고 있다. 마태복음 24:3-5절을 보면, 대환난의 시기가 나온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주의 오심과 세상 끝에 대해 계시적인 말씀들을 하셨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 24:3-5).
과거에 나는 5절,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첫째 해석은 다양한 종류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재림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할 것이라는 해석이요, 다른 하나는 지난 10년 혹은 15년에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해석인데 짐 존스(Jim Jones)나 바그완 쉬리 라즈니쉬 처럼 붐을 일으키면서 메시야로 나타나 추종자들을 모으는 형태의 해석이다. 나는 이 두 가지 해석이 다 옳지 않다고 느낀다. 나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뉴에이지를 연구하며 이 구절을 대할 때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뉴에이지의 기본 사상은 도사 예수(Master Jesus) 것과 같다. 이 사상을 옹호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기록되지 않은 기간 동안에 예수님은 여러 사교 센터들을 여행하였고 티벳,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 등과 같은 곳을 방문하여 신비학교를 다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신의 형이상학적 비밀들을 배웠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주장하길 예수꼐서 17년 동안 더 높은 의식을 추구하는 순례의 여행을 했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는 더 높은 자아가 됨으로 물리적인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여 도사 예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뉴에이저들이 더 높은 자아를 말할 때 ‘그리스도 의식(Christ consciousness)’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말한다. 다음은 어떤 뉴에이지 자료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진짜 사람을 분별할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그는 사람 안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는 능력이 있다고 가르쳤다. 이 원칙은 더 높은 자아이며 영적인 사람, 바로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스도 의식 또는 그리스도 원칙은 구세주의 사상을 대표한다. 그러나 정통 종교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신체가 있는 물리적인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능력의 높이까지 오름으로 구세주가 되었고 하나님의 참 아들이 되었다. … 다른 말로 하면, 예수 사람이 준비되었을 때, 그리스도 원칙 또는 그리스도 의식이 그를 장악하였다.
뉴에이지 자료에서 이러한 유의 글들을 셀 수 없이 읽은 후에 나는 다시 마태복음 24:5절을 살펴 보았다. 그때 내가 발견한 것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구절에서 헬라어로 “많은” 이라는 단어는 ‘폴러스’인데 이 뜻은 매우 엄청난 숫자, 즉 수백, 수천만, 수억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용어로는 ‘호이 폴로이’가 있는데 대중(the masses)이라는 뜻이다. 헬라어로 “내 이름으로 오리라”는 뜻은 그의 이름과 권위를 사용하여 그를 대표하기 위해 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4:5절이 말하는 것은 수백 수천만의 대중들이 그가 대표하는 것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오리라는 내용에 대해 여러 뉴에이지 자료로부터 취한 언급들을 보자.
예수는 역사적인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란 어떤 존재가 영원한 초월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는 자신 안에서 실현된 더 높은 의식 상태가 영원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그를 예배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우리에게 그를 따르라고 불렀으며 그의 발걸음을 따라 그에게 배우고 그를 본으로 삼으라고 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의식의 상태에 이르렀던 영혼이었다. 그 상태에 이른 다른 여러 사람들도 있다. 예수는 우리가 따라야 하는 청사진 같은 상징이다. … 그리스도가 되는 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 예수가 걸었던 같은 길을 걸음으로서 그리스도 의식에 도달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는 단지 그 패턴을 멋지게 보이신 표본이라고 하겠다.
성육신과 부활의 중요성은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분처럼 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에게 그러한 잠재력이 있다는 점이다. 예수의 중요성은 구원의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완전을 향한 모델로서 중요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앞으로 다가올 새인류의 완성된 견본으로 의식했다. 새 인류는 이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것이며 왕국을 설립할 것이고 새 시대를 도래하게 할 것이다.
뉴에이지의 관점에 의하면 예수는 뉴에이지 또는 물병자리 시대 사람들의 모델이다. 나는 이러한 언급들이 ‘그의 이름으로 오는 것’이라고 본다. 즉, 예수가 대표한 것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4:5절의 후반부를 보면,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라는 내용이 있다. 뉴에이지의 다음과 같은 언급들을 보자.
모든 사람은 개인적인 그리스도들이다. 이것이 뉴에이지의 가르침이다. 그리스도 자아를 접하는 체험과 그후 따라오는 떨리는 높임은 몇몇 특정 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조만간 이러한 높여지는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뒤에 처지거나 남겨지지 않을 거이다. 모든 사람이 인간의 진화에 있어서 이 단계의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곳에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께서 “아무도 주의 재림의 때를 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을 때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금, 우리 안에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임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닐까? 예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 시간이나 어떤 장소가 아니라 내면에 있다”고 말씀하실 때 어떤 힌트를 주셨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관상과 의식의 확장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볼 때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여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그리스도는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올 그리스도이며, 당신 각자가 그리스도이다. 당신 각자 그리고 모두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 의식은 당신이 더 진화가 되게 될 미래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다. 당신도 하나님의 그리스도다.
예수님의 예언을 뉴에이지와 연결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들어보자. 누가복음 21:7-8절에서 우리는 마태복음 24:3-5절과 똑 같은 설교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눅 21:7-8).
누가복음 21:8절을 보면 마태복음과는 달리 ‘그리스도’라는 말이 빠져있다. 영어 성경 번역 중에는 마태복음과의 일치를 위해 ‘그리스도’를 삽입한 것도 있다. 그러나 원어의 원본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그렇다면 누가복음 21:8절은 “내가 그라(I AM)”이 된다. 뉴에이저들은 자신들의 더 높은 자아를 언급할 때 “내가 그라(I AM)”고 부른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와 같다. 다음 내용을 주지하라.
그리스도 의식과 연합하는 첫째 체험은 영적의 초기 경계선을 지나 그리스도 자아 또는 여호와 자아를 접하게 된 것이었다.
이 내면의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 하나님-자아, 더 높은 자아, 그리스도신성(christhood), 여호와 (I AM, 나다), 부다 속성 등등이다.
따라서 “나다(I AM)”는 하나님이다. … 이 “나다”는 너이다. … 우주와 개인적 의식이다. … 그 자체를 하나님으로 아는 하나님이다, 그 자체를 당신으로 아는 하나님이다. 당신 자신을 하나님으로 아는 당신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뉴에이지의 이러한 언급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예언한 것은 현재 진행중인 뉴에이지 운동이라고 확고하게 믿게 되었다.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이 전성기를 이룰 때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재림하시기 직전에 셀수 없이 많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성을 선포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서두에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말씀처럼 보이고 느껴지고 들리는 메시지들을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예수께서 주신 말씀이 아닌 것이다.
불법의 사람
바울은 이 기간 동안에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포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살후 2:3-4). 접신을 해서 받은 정보에 의하면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그리스도 에너지”와 그 에너지를 의인화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다음 뉴에이지의 언급을 고려해 보자.
어떤 이름으로 알려지던 아바타(avatar, 전세계 선생)의 재출연은 여러 종교 및 사교 전통에서 예언되어 왔던 바이다. 가장 주된 출연은 물병 자리 시대와 연결되어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구세주는 다른 시대를 위해 매 2000년 마다 나타난다. 각 구세주는 그 시대의 분위기와 핵심 사상을 가져온다.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너희들 각자 내면에서 발견된다. 모든 인류는 각각이 신이며 그리스도신성(Christhood)이다. … 너희 지구 상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어떤 개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유일한 사람들은 의심하는 도마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성을 인정하길 거부하는 자들이며 그 신성을 오직 한 사람에게만 부여한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말을 들어줄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은 그들의 관심을 다시 자신들에게 두게 할 것이며 계몽하는 일에 전념하게 할 것이다.
나는 다가오는 물병시대의 메시야는 다름 아닌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말하는 “멸망의 아들”이라고 믿는다. 뉴에이지 운동은 그의 영적 기반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을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다. 다니엘 8:23절은 이 사람은 “어둠의 말”에 대해 전문가(master)라고 말하고 있다. 히브리 단어를 번역해 보면 속이는 것과 애매모호한 말을 하는데 기술적인 사람을 뜻한다. 이 점을 유념하고 다음 인용을 읽어 보라.
오시는 분은 그리스도인도, 힌두교인도, 불교인도, 미국인도, 유대인도, 이탈리아인도, 러시아인도 아닐 것이다. 그의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모든 인류를 위해 와서 모든 종교, 철학, 나라들을 연합할 것이다.
범세계적으로 모든 영성간의 연합을 성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다니엘서에서 묘사한 그 사람이어야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사회를 관상으로 포화시키려는 노력이 계속 진행 중에 있는 것이다. 이 존재가 등장하면 자신들의 더 높은 자아(또는 친숙한 영들, 악령들)를 접했던 모든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그를 “오시는 분”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며 그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다. 그는 이미 잘 준비된 기관들과 핵심 자리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도와 새로운 사회를 설립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의 마지막 절정이 될 것이다.
이 거대한 속임의 잠재 능력에 대해 인도 구루 라즈니쉬의 제자가 관찰한 내용을 검토해 보자. 이 내용은 적그리스도가 인류와 함께 무엇을 할지를 반영해 주고 있다.
라즈니쉬에게 뭔가 발생했는데 그는 다른 사람과 달라졌다. 그는 계몽과 쿤달리니의 오름 등의 어떤 변화들을 통과했다. 그의 존재는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바뀌었으며 그의 변화는 차례로 그의 제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서로 촉진시키는 조화가 만들어졌다.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거짓 기적들”을 행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앨리스 베일리는 뉴에이지 그리스도의 “역사”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2천년전 그리스도의 역사는 어떤 위대한 가능성과 위대한 권능의 존재를 선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다시 올 때 그의 역사는 이러한 가능성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며 인간의 참된 속성과 가능성을 드러낼 것이다.
이에 대한 실제 예가 뉴에이지 치유사이며 저자인 론 로스가 쓴 책에서 발견된다. 그는 수년 전 그가 참여했던 컨퍼런스에서 있던 일을 말하였다. 그 컨퍼런스는 유명한 치유사 아그네스 샌포드를 주 강사로 모셨다. 그 컨퍼런스에는 3천명의 참석자가 있었다. 로스는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던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가뭄에 대해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뭄이 끼칠 피해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샌포드가 강단에 서서 가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나는 이를 듣는 것이 지겹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내게 영적 여정에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배우시기 바랍니다. … 나는 비가 지금 남부 멕시코로부터 내려오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로스에 의하면 샌포드가 이 말을 한 후 몇 시간 내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한주 내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그녀에게 찾아가 비가 그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그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싫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의 능력을 의식하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비를 멈추십시오.”
샌포드가 말하는 “여러분의 능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대답이 그녀의 책 치유하는 빛 (The Healing Light) 에 나와 있다. 그 책 안에서 그녀는 그녀가 연설한 “영적 여정”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취할 수 있는 하나님의 양만큼만 우리를 위해 일할 것이다.
하늘 왕국에서 사는 법은 내면의 하나님의 빛을 켜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뜻을 배워야 하며 그의 에너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답고 단순한 법칙을 추구해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관상을 통해서이다. 샌포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성례와 관상을 섞는 법을 배웠다. …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의 의식이 정지되도록 명한다.
그 책에서 그녀는 다른 뉴에이지의 인물들처럼 초자연적인 원천을 향해 채널을 열었다.
우리는 급하게 흘러 들어오는 에너지를 의식하는 듯 했다. 마치 전기를 만진 것 같았다. … 영적인 빛의 진동이 온 몸의 세포를 뚫고 들어와 채우는 듯 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구멍 뚫린 스폰지처럼 하나님으로 가득찼다.
그녀는 로스가 참석했던 컨퍼런스에서 자신의 모든 철학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부분 하나님(part God)”이다. … 우리가 하나님의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활발한 에너지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의 법칙을 통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 자신이 이러한 법칙에 잘 맞추고 따르도록 연구하자.
샌포드는 그녀의 자서전 봉인된 명령들 (Sealed Orders) 에서 고백하길 자신에게 영적 영향을 준 것은 새사상(New Thought)을 지지하는 유명 인사 엠메트 폭스의 책들이라고 한다. 그녀는 폭스야말로 그녀의 영혼을 흥분케 하는 “계몽된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폭스는 다른 모든 뉴에이저들처럼 하나님은 “무한한 마음” 또는 “본질 그 자체”로서 “영적 유입(spiritual influx)”을 통해 일하고 관상을 통해 “우주적 법칙”을 이용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여기서 “영적 유입”이란 이러한 에너지와 능력들은 의식의 신비적인 상태를 통해 오며, 따라서 당신은 마치 샤머니즘처럼 당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로스가 서술한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사건은 “불법의 사람”이 와서 전세계적인 규모로 어떤 일들을 할 지에 대한 작은 그림이라고 하겠다. 이것이 바로 앨리스 베일리가 말한 “인간의 참된 속성과 가능성을 드러낼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간이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거짓 기적들”이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불법의 사람은 거대한 규모로 이러한 거짓 기적들을 행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치 모두 “그리스도들”인 것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그러한 엄청난 기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위대한 권능을 가지고 있으며 베일리가 말한대로 자신들 안에 “잠재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치유자”를 만난 어떤 여인의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자.
순간적으로 내 몸은 백색광으로 가득찬 것 같았다. 무릎에 힘이 없어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곧, 나는 서 있을 수 없었고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 의자에 앉혔다. 그후 나는 극심한 열이 내 머리 속으로 들어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는데 특히 왼편 두개골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이 체험을 하는 중에 나는 모든 것을 의식할 수 있었고 내 몸은 황홀함의 파장으로 가득찼다. 그 느낌은 바다 같았다. 오르가즘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함을 느꼈다. 내 모든 존재가 그 황홀함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내 안에서 증가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 위해 계속 깊게 심호흡을 한 것이 기억난다. 참으로 행복해서 기쁨 가운데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후 큰 웃음이 터졌다. 전에 백색광에 대하여 듣고 구상화도 하였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백색광을 체험하기는 처음이다. 그 즉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의 능력과 연관되게 되었고 나는 이것이 네게 전달된 에너지의 속성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 일을 일으킨 사람은 뉴에이저였다. 위 내용은 잘 알려진 사교자들도 악령들을 통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착각한다.
베일리는 또한 “지금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위대한 회복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언급 가운데 그녀는 “위대한 회복”은 “고대 신비들”의 회복임을 알려주었다. 고대 신비들이란 마법사들의 신비 학교들과 똑 같은 것이다.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의 종교 시스템의 기원에 대해 계시록 17:5절에서 알려주고 있다.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 17:5).
구약에서 바벨론에 대한 다른 용어는 갈대아(chaldea)다. 갈대인들은 형이상학 요법을 사용했던 종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첫째 신비 학교였다. 다니엘 4:7절은 “그 때에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가 들어왔으므로” 라고 말한다. 구약 레위기는 접신하는 자들에 대해 영적 간음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신명기 18장은 형이상학을 실행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비밀스런 바벨론은 지금 뉴에이지 형이상학의 기원 또는 ‘어미’가 된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의 영적 체제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해 고대 사교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들과 도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신비 학교들은 전부 바벨론으로부터 나왔으며 기본적으로 같은 것, 즉 고대 지혜를 가르친다. 요한은 역사 전반에 걸쳐 한번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온 고대 지혜를 보고 있으며 그 지혜는 적그리스도의 통치 가운데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접신을 할 때 최고 절정에 달할 것을 보았던 것이다.
성경이 적그리스도와 그의 계략에 대해 말한 것과 뉴에이지가 자신들의 의도에 대해 말한 것을 함께 보면 성경이 예언한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성도의 피
뉴에이지 사상의 주요 지침 중에 하나는 평화, 친절, 모든 인류의 연합이다. 우리가 알 듯 물병시대는 하나로 연합된 시대이다. 이러한 목표 가운데서 그들이 말하는 정화(cleansing)는 매우 껄끄럽다. 뉴에이지의 많은 책들이 그들의 목표가 이루어지는 정상의 때에 탈락된 자들(laggards)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뉴에이지 지도자들은 이 자들을 범세계적인 하나됨을 방해하는 유일한 존재로 여긴다.
5번째 뿌리의 인류의 잔재는 (변형되지 않은 인류) 새로운 우주의 시대가 열릴 때 초기 단계에 계속 살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더 높은 자아 의식으로 자신들의 의식을 확장 시키지 않으면 그들은 인류의 생명의 강으로부터 제거될 것이다.
연합을 추구하는 영혼들은 뉴에이지의 메시야의 부름을 따를 것이다. 영적 세상의 연합을 추구하는 그들의 내면적 충동은 더 높은 에너지와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리스도를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강렬하게 대항하겠지만 그렇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때 즈음이면 그리스도 에너지는 매우 강렬해져서 사람마다 각각 자신들의 업적, 재능, 소원에 따라 이 가속된 에너지를 자기 것으로 흡수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지막 모습은 진화의 사건이 될 것이다. 그때는 자기 중심적인 (더 낮은 자아) 하층 인간들이 사라질 것이며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새 인류는 새로운 종으로서 지구를 물려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집합적으로 예수가 가졌던 의식의 상태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뉴에이지 의식을 인격화시킨 앨리스 베일리 자신도 위의 인용을 지지한다.
새 시대가 오고 있다. 새로운 이상, 새로운 문명, 새로운 삶의, 교육, 종교, 정부가 천천히 가속되고 있으며 아무 것도 이 가속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오직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과 마음 문을 닫은 반항적인 사람들에 의해 새 시대가 지연되고 있다. … 그들은 자유의 시간을 방해하고 막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영적인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하며 과거의 모든 사상들과 이상들이 떠나가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각 개인에게 최고로 여겨지던 패턴에 맞추기 위해, 각 개인을 가장 많이 유혹했던 것들 때문에 개발되었던 생각의 습관들과 노력들과 모든 아끼던 경향들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죽음의 권능 아래에서 사라져야 한다.
만일 누군가가 이러한 발언들 배후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이해한다면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리스도 의식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남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에너지”를 자기 것으로 흡수할 수 있는 능력과 소원을 가진 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뉴에이지의 주요 지지자요 워싱턴 디씨의 마리안느 윌리암스 평화 노력 부서의 부장인 바바라 막스 허바드는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뉴에이지의 하나님)의 부분으로 여기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골라내는 작업”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골라내는 작업”의 필요성을 서술한다. 그 작업은 진화되기를 거절하는 반항적인 개인들을 골라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인간은 신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법이다.
우리는 제 10과에서 데빗 스팽글러의 언급을 기억할 수 있는데 그는 루시퍼가 인간들의 “내면의 진화”의 천사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루시퍼를 사탄, 방해자로 알고 있다. 데살로니가 2:9절은 사탄은 적그리스도에게 능력을 주는 존재라고 알려주고 있다. 적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자들은 실제로 사탄을 대항하는 자들로서 그들은 그 이유로 고난을 당할 것이다.
성경은 적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에 적그리스도에게 굴하지 않는 자들이 핍박과 죽음을 당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 기간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과 위에서 뉴에이저들이 말하는 언급을 비교해 보면 참으로 놀랍다. 다음 예언은 적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에 참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참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어떤 일들이 예비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9절에서 말씀하셨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 14:9).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들”이라고 주장하며 주의 이름으로 오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다. 계시록은 이 기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계 6:9-10)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4).
다음 구절은 바른 신앙으로 인해 겪게 될 사건들이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눅 21:16).
이 구절이 함축하는 것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신앙의 사람들을 처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인류를 위한 이타적 사랑의 행위로 간주될 것이다.
이러한 복음적 견해는 분명히 뉴에이지 영성에 연루되거나 빠져있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할 것이다. 결국 뉴에이저들은 절대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반항자들을 제거하겠다고 말하였으며 어떻게 그들을 제거할 것인지 참 애매모호하다. 그럼에도 닐 도날드 월쉬가 그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정보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정신 나간 행동이요 불가능해 보이는 행동을 합리화 시킬 수 있게 된다. 그의 ‘하나님’이 뭐라고 말했는지 들어보자.
네가 이해해야 하는 첫번째 것은 (이미 내가 네게 설명한 것처럼) 히틀러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그는 고통을 준 것이 아니라 고통을 끝내게 한 것이다.
죽음이란 없다. 생명은 영원하다. 생명이기 때문이다. 너는 단지 형태를 바꿀 뿐이다. … 네가 형태를 바꾸면, 과거의 삶의 결과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앎으로만 남을 뿐이다.
문제는 히틀러의 행위를 악하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러 번 반복하여 말한 것처럼 우주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히틀러는 괴물로 보는 네 생각은 그가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이도록 명령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맞는가? 네가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을 만일 내가 네게 누군가에게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중 가장 위대한 사건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다음은? … 못된 여우가 못된 토끼를 가시 밭으로 쫓았다고 하여 못된 여우를 탓할 수 있겠는가?
이 언급은 많은 것을 드러내고 있다. 전통적인 도덕 관념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있다. 즉, 월쉬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사실은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하는 더 높은 자아에 조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월쉬 자신이 병들어 떨고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향하는 젖소 수송 트럭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다면 과연 이러한 그가 받은 메시지를 심오한 고도의 지혜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나체로 벌거벗겨져서 가스 방으로 들어가 가장 무섭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면서 그 얼굴에 미소를 띌 수 있을까? 나는 그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월쉬는 지금 서구 세계를 휩쓰는 시크릿 의 주요 연사 중 한 사람이다. 시크릿 에서 월쉬는 “현대의 영적 메신저”로 불려지고 있고, 그의 책 하나님과의 대화 는 ( 위의 히틀러에 대한 인용이 이 책에서 온 것이다) “땅을 흔드는” 책으로 불리고 있다.
혹시 유럽에서의 히틀러의 대량 학살에 대해 월쉬의 더 높은 자아처럼 말하는 영적인 요소는 없었을까? 당연히 있다. 다음 증거를 고려해 보자. 나치주의의 주요 상징은 스와스티카(swastika, 만자 십자장, 나치스 독일의 표장)는 인도 전역의 많은 사원에서 쉽게 발견되는 오래 동안 있어온 힌두교 상징이다. 이 단어는 독일어가 아니라 범어(산트크리트어)로서 그 뜻은 “탁월한 것”이다. 뉴에이지 책에서는 이 단어의 의미를 “샥크라가 활동하고 개발되고 열리고 깨어난 쿤달리니 에너지에 의해 능력을 얻는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 따라서 나치주의의 깃발은 모든 뉴에이지 운동 배후의 에너지를 상징하고 있다. 뉴에이저들 마저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데빗 스팽글러는 그의 책들에서 “나치 운동은 사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스와스티카 상징은 매담 블라바츠키의 개인 브로치에 뚜렷하게 나타나있으며 약간 오른 쪽으로 기울인 것까지 나치의 것과 정확하게 같다. 그녀는 나치당이 형성되기 수십년 전에 이 상징을 달고 다녔던 것이다.
또한 누구든지 쉽게 나치주의와 힌두 카스트 제도의 고대 지혜 간에 닮은 꼴을 발견할 수 있다. 힌두 카스트 제도 내에는 고급층 브라민족 (Brahmin, Aryan)과 낮은 층의 손댈 수 없는 층이 있다. 나치들도 아리얀(Aryan) 이라는 용어를 취했는데 그 뜻은 뛰어난 족속(the worthy race)으로서 힌두교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단어는 사람들이 잘못 아는 것처럼 고대 독일어와 관련이 있지 않다. 오히려 힌두 단어로서 고상한, 또는 탁월한 이라는 뜻이다.
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인가?
마태복음 24:14절은 그 7년 기간 동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라고 말한다. 적그리스도가 온 힘을 다해 짓밟으려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온다고 선포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누가복음 21:8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다’ 또는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면서 주님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며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가 오면 주님은 “능력과 큰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이며 (눅 21:27), “덫과 같이” (눅 21:34) 오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온 지구상에” 임한다 (눅 21:35).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는 통치의 자리에서 쫓겨나 주의 “나타나심으로” 멸망될 것이다 (살후 2:8). 그후 왕국은 약속대로 이스라엘 안에 설립될 것이다. 에스겔 36:22-38절과 43:1-9절을 읽어 보라.
성경 예언에 있어서 한가지 사실이 매우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왕국의 설립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때 그전에 7년 동안 이 땅에 군림하고 있던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사건은 서기 1세기에 이미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네로 황제가 세상을 지배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페르시아, 인도, 중국 등, 네로가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거대한 제국들이 이 땅에 많았다.
여러 기독교 교단 중에는 교회가 사실 영적 이스라엘이며 민족 또는 족속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들은 사라졌고 오직 그리스도의 몸에만 그 약속들이 적용된다는 믿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과는 영원히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 7:2-4절에 의하면 그럴 수가 없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계 7:2-4).
이 사건 또한 서기 1세기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또한 은유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각 족속의 이름이 그대로 나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교회가 지금의 영적 이스라엘이라면 계시록에 표현된 족속 중에 어떤 영적 족속에 그리스도인들은 속하게 되는 것인가? 그 대답은 아무 족속에도 속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구절들은 144,000 명의 유대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마지막 날들에 참된 왕국의 참된 복음을 선포할 것이다. 누가복음 1:31-33절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 1:31-33).
“그 조상 다윗의 왕위”와 “야곱의 집”은 둘 다 이스라엘 나라를 언급하는 것이지 교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 2:3절도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시온은 민족 이스라엘을 뜻한다.
나는 논쟁이 되는 부분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나라가 되었다. 이제 흩어진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로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신약에서 유대 민족에 대해 예언한 것들이 이제 완성될 때가 다 되었다.
베일리의 목표가 실현되다
한번은 앨리스 베일리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했다.
향상된 인간들을 위한 교육과 안내는 대중 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고대 지혜를 체험한 음성이 우리에게 한 단어를 말한다면 관상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그게 전부인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자, 이것이 정확하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보여준 대로, 인간 활동의 모든 주요 부분에 이미 관상 요법과 실행의 씨앗이 뿌려져 있으며 물병시대 영성과 조정되고 있다. 이는 누구든지 독자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신비주의의 만발함은 과거에 없었다. 누구든지 얼마든지 지금처럼 신비주의의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던 때가 없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뉴에이지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뉴에이지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은 점점 약해지더니 거의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만일 당신이 기독교 서점에 가서 변증 분야를 보면, 무신론, 진화론, 몰몬, 이슬람 등에 대한 여러 제목의 변증의 책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뉴에이지에 대항하는 변증의 책들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뉴에이지가 우리의 친구들과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어떤 레이키 잡지에서 레이키를 하는 곰 인형 광고를 발견했다. 그 광고는 “이 곰 인형은 레이키 에너지는 받을 수 있으며 어린아이들에게 그 에너지를 줄 수 있습니다” 라고 되어 있었다. 이는 뉴에이지의 영향을 우습게 넘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깜짝 놀랄 실제 예이다. 뉴에이지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
[출처] [많은 사람..] 11. 마지막 때|작성자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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