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 속에 가끔 그려보는 공간이 있다. 요즘 대세인 미니멀리즘 처럼, 나는 항상 꼭 필요한 것만 들어있는 내가 쉬고 숨쉴 수 있는 평화로운 방을 머리 속에 그려보고, 갖는다. 그 방에는 성경책과 백지 노트북과 펜, 그리고 물병이 있다. 열린 창이 있어 빛이 들어오고 하늘을 볼 수 있다.
그 방에 있는 것 만큼이나 없어야 하는 것들이 중요하다. 그 방에는 남편도 가족도 친구도 없다. 내가 사랑하는 다른 책들도 음식도 벽에 걸린 액자도 없다. 그 방은 나만의 다락방이다. 내가 숨는 방 그리고 숨쉬는 방이다.
만일 그러한 방을 캔버스에 그려본다면, 그 그림은 생명없는 물체 몇 개만 놓여있는 정물화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방은 살아있는 나와 살아계신 하나님이 만나는 살아 숨쉬는 공간이며 그 방에 놓여있는 성경책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물과 양식으로 변화되는 신비한 만나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라이빗한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죄성이 있어, 남에게 노출되면 부끄러울 부분이 있다. 실수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고 수정해가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성경에 예언된 일들이 현실화되어가는 지금, 이를 감지하고 주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지금이 마지막 때가 아닌가 하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각자에게 꼭 필요한 그러한 나만의 공간 즉, “프라이버시의 상실”이다.
오래전, 조교시절, 그러니까 1991년 쯤 교수님이 나에게 책을 한 권 주시며, 읽고 리뷰를 써서 학회지에 제출하라고 했다. 호주의 학자가 쓴 그 책의 제목이 “Total Control, We Have Nowhere to Hide” 인데 기술의 발전과 테러리즘과 같은 범죄로 부터 안전과 평화를 도모한다는 명목 하에 개인과 국가는 점점 독립성을 상실하고, 단일세포와 같은 시스템에 소속되어 중앙집권 하에 일거수 일투족 뿐만 아니라, 생각과 발언까지 모두 감시, 기록 및 통제되는 사회가 온다는 내용으로 그 책을 읽을 당시에는 공상과학 소설같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마지막 챕터에 나오는 저자의 결론으로, 그는 역설적으로 완전한 통제는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Total control can be liberating!” ). 감출 것이 없는 사람들이 그러한 시스템 하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자(“If we cannot avoid it, we should embrace it.”) 였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입장을 받아들이는 듯 하다. 안전과 편리을 위해서라면, 칩 이식도 받겠다고 하는 사람이 50%는 되는 것 같다. 성경에 이에 대해 경고된 내용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데이터베이스에 필요하니 사진과 주소,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제출하라고 했을 때, 데이터베이스 일을 한 경력이 있는 나는 그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나에 대한 맞춤형 보고서 예를 들어 헌금 내역 등을 간단히 출력할 수 있고 내 얼굴 사진도 함께 나오니 얼마나 편리한가.
함정은 그러한 데이터베이스 정보를 이용할 권리가 평신도인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즉, 나에 대한 정보는 노출이 되고, 데이터베이스 소유자의 정보를 나는 볼 수 없다. 그러한 상하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예수님이 서로를 선생이라고도 부르지 말고 형제 자매로 삼으라고 하신 명령에 어긋나는 것이다.
구원(salvation)의 히브리어는 room to breathe 즉 숨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인류 역사 전체가, 우리를 바로 점수 매겨 처리하지 않고, 좌충우돌하고 고민하며 길 찾아가도록 그렇게 만들어주신 숨쉬는 공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도 최종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서로에게 그러한 시/공간을 허락해야하지 않을까?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 만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자기 이마 안에나 손 안에 그의 표를받으면 바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 곧 그분의 격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즙을 마시리다. 그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팔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는도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낮이나 밤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는도다. 요한계시록 13:16, 17, 1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