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아침 일하러 가는 길에 보니까 안개가 자욱히 서렸어요.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안개는 공포 영화에서 처럼 무시무시한 것일 수도 있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을 연상시키는 포근함, 또는 사랑의 완성인 결혼을 향해 걸어들어가는 신부를 둘러싼 화려한 면사포 같기도 해요.
통역일을 하는 저는 종종 전에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들을 찾아가게 되는데, 운전하며 일하러 가다 아침 안개를 보면 안개 속에서 따뜻한 빛을 발하는 해 아래 세상을 보며 하나님 이 곳에서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평화와 기쁨이 차오름을 느끼곤 해요.
오늘은 부활절. 예수님이 마술사 후디니 처럼 죽다 살아나는 묘기를 부려 사람들을 놀래키고 스릴을 맛보게한 깜깍쇼가 아니라, 확실히 죽고, 사흘 후 확실히 살아 우리의 부활을 확실히 이루신 날이죠.
어리고 철 없을 땐 하늘나라가 음식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부족함 없이 잔뜩 쌓여있는 곳이라고 상상했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예언처럼 강아지를 선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리워하는 마음에 내가 원하는 천국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만나는 곳, 영원히 함께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생활에서 탈출시키신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은 그때 벌써 그들에게 만남의 텐트를 만들게 하시고, 그 인테리어의 세부사항을 장식물이며 커튼 색깔 등등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지시하시고, 희생제물의 피를 지성소에서 뿌리게 하여 이미 죽을 마음을 품으셨던 거죠.
노년이 코 앞인 지금도 하나님 계신 천국을 소망하기 보다는, 내 사랑하는 강아지, 아버지, 큰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미술 선생님 등과 그 곳에서 만나기를 더 원하는 철없는 저이지만, 아무튼 밥그릇을 따라가는 강아지 처럼 하나님이 내 마음이 소망하는 밥그릇을 자꾸 옮겨가시면, 저는 그 것을 따라가게 되어 있죠.
밥그릇을 죽음의 심연 너머로 가져가시니, 저도 그 심연을 건너 뛰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만남의 텐트에 지성소를 두고 의식을 통해 선과 악을 확실히 구분하도록 가르치신 하나님. 그 안에서 사람을 건드리지 않고 대신 짐승을 도살해 그 피로 우리 죄값을 치르게 하시고, 스스로 피흘려 도살되겠다고 오래 전부터 마음 먹으신 하나님.
하나님의 키워드는 항상 “함께” 였음을 알겠습니다. 예언을 통해 알리고 또 알리며 우리에게 오고 또 오셔서 드디어 “함께”라는 프로젝트를 완성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마치 공포 영화에서 안개가 거의 다 걷히고 악이 상상을 초월하는 흉악한 모습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지금, 곧 아침의 자욱한 안개가 서린 신비한 길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저의 몸이 미끄러지듯 그러한 길을 따라 이동하며, 천국에 입장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곳에서 아버지가 내 이름 부르시며 “나 여기있다”하는 음성 들으면, 그 모습 보게되면 게임 오버입니다.
빛을 반영한 따뜻한 흰색의 안개가 걷히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천국에 첫 발을 디딜때 맛보게 될 만남의 기쁨이 얼마나 클지, 소심한 제가 혹시 기절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