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1장

선장이 그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오 잠자는 자여, 어찌 된 일이냐? 일어나 네 하나님을 부르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시면 우리가 망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네 직업은 무엇이냐? 너는 어디서 왔느냐? 네 나라는 어디냐? 너는 어느 나라 백성이냐? 하니…  그때에 요나가 그 사람들에게 말하였으므로 그들이 그가 주의 앞을 떠나 도망한 것을 알고 심히 두려워하며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행하였느냐?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오 주여, 주께 간청하고 간청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으로 인하여 우리가 망하지 않게 하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 사람들이 주를 심히 두려워하여 주께 희생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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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때 커다란 고래 속에 갇힌 요나의 그림을 보고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아무도 그 의미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요나서의 주인공은 요나가 아니라 니느웨 사람들이다.  요나는 메신저 즉, 심부름꾼일 뿐이다.

요나는 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가기 싫었던 것일까?  자신의 민족과 상관없는 이방인들 게다가 죄인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풍랑을 만난 배에 탄 사람들 처럼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으나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노아 때 처럼, 그리고 지금 처럼.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과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방 전도하는 사람들 처럼 창피함과 조롱과 무시 등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하게 “안”에 머물고 싶어하고 우리의 “정체”를 밝히기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밖”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신다.  밖에 있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이 목숨을 잃을 뿐 아니라 그 후에 영원히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 하게 되면 배에 탄 사람들 처럼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릴 것이다.

말도 안통하고 환경도 열악했던 한국에 찾아왔던 서양의 선교사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오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 우상숭배를 하며 지옥에 이르는 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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