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찾아오셨고 또 주께서 친히 이르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수태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 정한 때에 늙은 나이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5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났을 때에 그는 백 세더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웃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듣는 모든 자가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하고
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 아이나 네 노예 여자로 인하여 그 일을 네 눈앞에 근심거리로 두지 말고 사라가 네게 말한 모든 것에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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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의 어머니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소설의 주인공 “어머니”가 어린 소녀였을 때 친척 아기를 돌보다 몰래 자신의 젖을 물려보며 강한 모성애를 경험하고 결혼 후 자신의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며 행복해 하는 내용이 나온다.
펄벅은 선교사였으나 그녀의 소설은 하나님이 없는 인간사에 대한 내용이라 매우 잘 기술되어 재미는 있으나 내용이 슬프다. 남편과 아기들과의 행복은 잠시.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집을 나가고 혼자서 시모를 돌보며 아이들을 키우면서 외로움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내용으로 접어든 지금, 나의 마음도 어두워진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고 우리 인간끼리 두면 우리 안의 죄성과 마귀의 영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점점 더 어둡고 힘든 것이 되다가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임을 소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죽음을 미화하거나 당연한 결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복음은 그러한 배드 뉴스의 반전으로 우리를 웃게 해주는 굿 뉴스이다. 농담을 듣고 웃겨서 잠시 웃는 것이 아니라 농담처럼 어이없는 일에 대해 얘기하신 후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져 깜짝 놀라고 진짜 행복해져서 웃는 웃음이다.
전 장에서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사라가 웃었다고 야단치듯 놀려주신 하나님. 21장에서 믿지 않았던 아브라함 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나고 사라는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웃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듣는 모든 자가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라고 한다.
나도 행복해져서 웃는다. 하나님께서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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