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0장 – 빛의 자녀로의 초대

이에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르되, 내가 주 너희 하나님과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17 그런즉 이제 원하건대 내 죄를 이번에 한 번만 용서하고 주 너희 하나님께 간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16-17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이집트 땅 위에 어둠이 있게 하되 감촉으로 느낄 수 있는 어둠이 있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자기 손을 내밀매 짙은 어둠이 사흘 동안 이집트 온 땅에 있었으므로

그들이 사흘 동안 서로를 보지 못하며 아무도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지 못하였으나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1-23

*****

메뚜기의 공격을 받은 파라오는 모세에게 용서를 빌며 하나님께 간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고 하는데 메뚜기가 사라지자 마자 그는 다시 마음을 굳힌다. 

그러자 파라오와 이집트 인들은 “감촉으로 느낄 수 있는 어둠”을 “사흘” 동안 경험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거처에는 빛이 있다. 계시록에 나오는 천국처럼.

“어둠 속의 사흘”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경험하셨던 “죽음의 사흘”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사람들은 빛의 부재로 인해 어둠 속에 갇혀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로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둠의 재앙이 오기 전에 파라오가 메뚜기의 공격을 “죽음”으로 표현하며 제발 살려달라고 하는데, 이는 죽음과 같은 어둠이 닥치기 전에 이를 피할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을 보지 못하는 어둠은 영적으로 눈 먼 상태를 의미 하기도 하여  분별력의 상실을 하고 속아서 예수님이 아닌 적그리스도와 같은 지도자를 따라감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몸의 등불은 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단일하면 네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하되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라.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마태복음 6: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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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9 – 10:2 주이며 주인이신 하나님

주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이집트의 가축을 분리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것 중에서는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주께서 정해진 때를 지정하여 이르시되, 주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9:4,5

이제 내가 내 손을 내밀어 역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치리니 네가 땅에서 끊어지리라. 내가 바로 이런 까닭으로 너를 일으켰나니 이것은 곧 네 안에서 내 권능을 보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밝히 알리려 함이니라. 네가 여전히 내 백성을 대적하여 네 자신을 높이고 이로써 그들을 가게 하지 아니하려느냐? 9:15-17

파라오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내가 죄를 지었노라. 주는 의로우시고 나와 내 백성은 사악하도다. 9:27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내가 그 앞에서 나의 이 표적들을 보여 주려 함이며 2 또 내가 이집트에서 행한 일들과 내가 그들 가운데서 행한 나의 표적들을 네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의 귀에 고하게 하려 함이라. 이로써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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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파라오에게 “내 백성을 가게하여 그들이 나를 섬기게 하라.” 라고 명하고 그가 거절하자 전염병, 물집이 터지는 종기, 역병, 우박 등의 재앙을 내리신다. 10장 11장에 더 무서운 재앙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과 구분하여 그들에게만 내리신다.

출애굽기를 읽으며 하나님께서 이집트와 파라오를 향해 내리는 재앙들이 오히려 위로가 되는 이유는 날로 강도를 더해가는 사악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파라오 보다 더 철저히 인간이 노예화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악함에 대응하는 하나님의 징벌이 상대가 항복하기 까지 그 수위가 점점 더 높아졌음을 기억하자. 파라오를 현재의 악의 실체로 대입해 보면 이를 대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이 통쾌하고 안심이 된다. 그러라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고 오늘 아침 그 말씀을 받고 감사하며 가슴에 꼭 끌어 안는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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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불통

 

어제 아침 갑자기 인터넷 접속이 않되어 마음이 다급해 졌었다.  이 지역에 outage가 있나 찾아봤더니 정상이라고 나온다. 인터넷 제공회사에 전화해서 알아봤더니 Auto Pay로 셋업해놓은 카드 결제가 않되어 끊어진 것이었다.  신분도용으로 인해 새 크레딧 카드를 받고나서 새 번호로 업데이트하지 않은 탓이었다.  새 카드번호를 알려주고 몇 분 후에 금방 인터넷 연결이 되었다.

쉽게 문제가 해결되어 안심하면서도 그동안 물이나 전기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해온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요구되는 것을 준수하지 않으면 다음 버전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는 공식 발표가 생각나서 였다.

1993년 말, 정부 기관에서 일할 때 상관의 지시로 이제 막 도래한 인터넷을 주정부 기관장들에게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했었다.  준비를 위해 인터넷을 소개하는 책을 여러 권 사서 읽었는데, CERN, DARPA 등이 등장하는 인터넷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모두 같아서 누군가 스크립트를 돌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젠테이션 배경을 World Wide Web의 웹처럼 거미줄 모양으로 만들며, 왠지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그 때는 모든 책들에 소개된 대로 인터넷이 모두에게 무상으로 제공되고, 상업활동은 전혀 할 수가 없고 부도덕하거나 폭력적인 컨텐츠 등의 포스팅이 금지되어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고, 개인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도 철저히 보호되도록 정부에서 관리 감독을 한다고 소개 했었다.

지금은 그 때 약속되었던 것들은 모두 깨어졌는데 그 중간 과정에서 net neutrality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무장해제 시키고 그 제도도 없애서 이제는 세력이 있는 개인과 조직이 마음대로 조종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브라우저 데모를 하다가 “커넥트”가  않되어 그냥 하얀 백지 스크린이 나오면 참석자들이 모두 웃었었다.  컴퓨터 화면에서 먼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개념이 마술 거울에 들어가는 것처럼 신기하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 후 인터넷은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왔는데,  access denied가 되어 그 때처럼 하얀 백지 스크린을 쳐다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거대한 거미줄 시스템에 “커넥트” 되어 사물화 되고 통제되는 상황에서 비자발적으로 나마 나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러한 상황이 오든 안 오든 몇 분간의 불편함을 겪으며 그 가능성과 나 자신의 의존성에 대해 깨닫게 된 것도 감사하다. 

* “The Hebrew and Greek alphabet does not have separate characters or alphabets for numbers and letters. Letters are also used as numbers. So each letter is a numerical value.

The Hebrew equivalent of our “w” is the letter “vav” or “waw”. The numerical value of vav is 6. So the English “www” transliterated into Hebrew is “vav vav vav”, which numerically is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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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6장

내가 파라오에게 하는 일을 이제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인해 그가 그들을 가게 하고 강한 손으로 인해 그가 그들을 자기 땅에서 쫓아내리라1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니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내가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내가 뻗은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하리라.7 내가 너희를 취하여 내게 한 백성으로 삼고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는 주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6,7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라. 26

*****

정말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 아니 하나님께서 역사를 반복되게 해서 우리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이 되게 하신 것 같다.  그 어느때보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이집트같이 느껴져 “데리고 나가신다”는 말이 반갑다.

너희들의 신음소리를 들었다고 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자손들을 군대라 부르시며 일일이 호명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파라오에게 그들을 “보내라” 라고 명령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나가라” 라고 명령하셨다.

“군대”라는 말이 눈에 띈다. 하나님과 모세와 아론이 데리고 나갈 때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순종하는 것도 민간인에게는 새로운 각오와 군인 같은 용기가 필요해서 일까? 
나도 매일 주어지는 일상을 큰 변화없이 살아가면서도 각오를 달리해 영적인 분별력과 무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경고된 위험을 피하고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사령관 즉 하나님의 명령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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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장 –  작업감독, 작업반장, 벽돌 작업량

모세가 파라오에게 가서 자신의 사람들과 사흘 길쯤 사막으로 가서 하나님께 희생물과 예배를 드리고 오겠다고 하자 파라오는 “주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음성에 순종하여 이스라엘을 가게 하겠느냐? 나는 주를 알지 못하며 이스라엘도 가게 하지 아니하리라” 2 하며 가서 “너희의 짐을 지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감독들과 직무 수행자들에게 더 이상 벽돌 만드는데 필요한 짚을 그들에게 주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자 하니 “더 많은 일을 주고 수고하게 하여 헛된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라.”

작업 감독들이 그들을 재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었을 때와 같이 너희 일 곧 너희의 당일 작업을 완수하라, 하고

14 파라오의 작업 감독들이 이스라엘 자손 위에 세운 자들 곧 그들의 직무 수행자들을 때리며 요구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벽돌 만드는 작업을 이전과 같이 다 마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13, 14

작업감독들은 그들을 때리며 “이스라엘 자손의 작업반장들아, 너희는 너희의 당일 작업 벽돌 수효를 조금도 줄이지 말라,” 19 한다.

Tale of bricks 지정된 수효의 벽돌. 벽돌은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다. GMO처럼.

사흘을 걸어 사막으로 가서, 즉, 세상에서 분리해 나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 할 때, 이를 못하게 막는 영적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성경을 직접 읽고 성령께 만 의지해 그 분의 해석을 듣기 원하는데 파라오로 상징되는 악한 영의 군주는 그의 작업 반장들을 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벽돌화 시켜 “짐”을 지우고 자신들이 만든 frame과 structure 즉 작업지시서에 따라 일을 하게한다.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내려 주시는 신령한 생명의 빵이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희생해서 장막을 찢으셨으니 더 이상 대 제사장을 통과하지 않고 그 분께 직접 가서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직접 받을 수 있는데, 세상은 나와 하나님 사이에 끼어들어 왕 노릇하며 자신들이 하나님인양 나에게 작업 지시를 내린다. 

그래도 나는 갈거다.  사막 길을 걸어 나의 하나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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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 바빌론 강가에서 요단 강을 그리워하며 우리는 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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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ivers of Babylon ( with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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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5  – 노예에 대해

백성의 작업 감독들과 그들의 직무 수행자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파라오가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11 너희는 짚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주우라. 그러나 너희 일은 조금도 줄이지 아니하리라, 하매 10, 11

이에 백성이 이집트 온 땅에 두루 널리 흩어져 짚 대신에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니라. 13 작업 감독들이 그들을 재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었을 때와 같이 너희 일 곧 너희의 당일 작업을 완수하라, 하고 12, 13

파라오의 작업 감독들이 이스라엘 자손 위에 세운 자들 곧 그들의 직무 수행자들을 때리며 요구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벽돌 만드는 작업을 이전과 같이 다 마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14, 15

*****

노예에도 서로 다른 종류의 노예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예란 무엇인가?  자유가 없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판단할 수 없고, 소유권도 없는 존재. 작업 감독과 직무 수행자의 명령에 따라 일을 수행하는 기계 같은 존재로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상실하고 인간으로 서의 존엄성을 상실한 사람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우상 숭배하여 스스로 노예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돈과 현재 삶의 안락 또는 현상유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육적으로 사는 사람들. 또는 이 장에 나오는 것처럼, 노예와 자유인 사이에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유를 선택하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다시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바울과 같이, 스스로 노예가 되는 사람. 노예라기 보다 종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즉, Slave 라기 보다 Servant로 불러 먼저 종이 되신 예수님을 따르고자 자발적으로 종이 되는 사람들.  이런 종류의 종 또는 노예들 만이 자유의지와 존엄성을 상실하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것은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19

Although I’m free from all people, I have made myself a slave for all people to win more of them. 1 Cor 9:19 N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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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 – 하나님의 강한 손

그러나, 보소서,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4:1

오 내 주여, 나는 말에 능하지 못하나이다. 지금까지도 그러하였고 주께서 주의 종에게 말씀하신 이후에도 그러하오니 나는 말이 느리고 혀가 둔하나이다, 10

누가 사람의 입을 만들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귀먹은 자나 보는 자나 눈먼 자를 만들었느냐? 나 주가 아니냐? 그런즉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하여 네가 할 말을 네게 가르치리라.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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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파라오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게 한다고 하자 그는 “내가 누구이기에 파라오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리이까?” 라고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등 여러 말을 하며 “예!” 라고 선뜻 답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다 답해주시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라고 까지 하셨는데  4장에서 모세는 이번에는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을 거다” 라고  발뺌을 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표적들을 보여주시고 사람들이 그 것을 보고 믿을 거라고 하시지만, 모세는 이 번에는 자신의 언변의 부족을 언급하며 능력이 안된다고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며 그의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우라 하신다.  화를 내시지만, 모세의 의견을 반영해서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우시는 하나님.  그래도 직접 말씀하시는 사람은 모세이다.  나중에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이 모세와 다른 사람임을 아셨기 때문이 아닐까?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말들을 줄지니라… 그가 백성을 향해 네 대변인이 되리니 그가 곧 그가 참으로 네게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리라. 15,16

나도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저하고 또 주저하게 된다.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고, 능력도 않되고 등등.  하나님께서 부르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으나 순수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능력은 상관이 없었을 테니. 

소심하고 약한 우리를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의견도 참작해서 계획을 수정하기도 하시는 하나님. 겸손하시지만 모세가 너무 답답하게 굴자, 자신의 이름도 가르쳐 주시고 표적도 주시고, 입을 포함한 모든 것의 창조주라고 일깨워 주셨다.

모세는 그렇게 대단한 능력의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갭을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기 전에 모세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과정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과 만난 후, 그 분의 임재하심과 능력으로 세상에 나아가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 의지에 나의 뜻을 맞추고 “예!” 하고 씩씩하게 답하면, 입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내 입과 함께하여 할 말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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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장 – Stranger in a strange land

모세가 장성하여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의 짐을 보다가 어떤 이집트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들 중의 하나를 치는 것을 보매12 그가 이쪽저쪽을 살펴보다가 사람이 없음을 보고는 그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그를 모래 속에 감추니라. 11,12

히브리 사람들 중에서 두 사람이 서로 싸우므로 그가 잘못한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네 동료를 치느냐? 하매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통치자와 재판관으로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였느냐? 네가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 같이 나를 죽이려 하느냐? … 15 이제 파라오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으나 모세는 파라오의 얼굴을 피해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 거하며 우물 옆에 앉았더라. 13-15

이제 미디안의 제사장에게 딸 일곱이 있더라. 그들이 와서 물을 긷고 구유에 채워 자기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아내니라. 그러나 모세가 일어나서 그들을 도와 그들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니라… 20 그가 자기 딸들에게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내버려 두고 왔느냐? 그를 불러 그가 빵을 먹게 하라, 하였더라. 16,17 20

그녀가 그에게 아들을 낳으매 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말하기를,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도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22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이집트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속박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속박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그들의 소리가 올라와 하나님께 이르니라. 24 하나님께서 그들이 신음하는 것을 듣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사2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바라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시니라. 23-25

 *****
모세는 이집트의 왕족이 되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을 자신의 형제로 여기고 강제노역하는 그들의 “짐”을 걱정했다. 어떤 이집트 사람이 자기 형제들 중의 하나를 치는 것을 보고” 그는 이집트인을 죽인다. 

그러나 그가 형제로 여긴 사람들은 그에게“누가 너를 통치자와 재판관으로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였느냐?” 라며 그를 거부한다. 예수님에게 했듯이.

모세가 한 일이 드러나 파라오가 그를 죽이려 하자 그는 미디안으로 도주하고 그 곳에서 나은 아들에게 게르솜이란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 곳에서 이방인이됨”(Stranger There)이라는 뜻이다.   

미디안 땅에서 보금자리를 꾸미지만 그 곳은 계속해서 살 정착지는 아니었다. 곧 하나님의 호출을 받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와 강제노역의 땅 이집트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데리고 나가라는.

25절의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니라”를 찾아보니 NLT 버전에 “He knew that it was time to act.” 라고 되어있다. 즉 하나님은 스스로 맺으신 언약을 이행하실 때가 되었다고 스스로 결정하신 것이다.  모세는 죽지않으려고 달아난 것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은 그를 우물 옆에 앉게하여 나쁜 목자들을 쫓고 “일곱” 처녀들과 양떼에게 물을 먹이는 진짜 목자 역할을 하게 하시고 “빵”을 먹이시고 그를 예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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