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h Me

다이닝룸에 설치된 커튼봉이 커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남편이 앵커를 박고 고쳤는데 벽에 더 큰 손상을 입히며 다시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전문 목수에게 맡기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리뷰가 괜찮은 회사에 연락해 견적요청을 했다.  두 청년이 방문했는데 집안을 살펴보는 것 같아 경계심이 생겼다.

때가 때인지라 외부 사람이 집에 올 때마다 불안하다. 남편은 한 술 더 떠 그들이 가고난 후 나 보고 한 남자 귀에 이어링이 다섯 개나 박혀있는거 봤냐고 그래서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견적을 수락하고 다음 날 수리하러 오기로 했다. 하루종일 일한 결과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실망감과 낯선 사람들을 집에 들인다는 불안감으로 기분이 다운되어 함께 기도했는데, 기도 중에 그들이 일을 잘하게 해달라는 기도 뿐만 아니라 좋은 만남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는 항상 그렇게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보다 평화롭고 밝은 상태로 끝나서 좋다.

다음 날인 어제, 그들이 왔을 때 한 청년이 나보고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었다. 그냥 취미로 그린다고 했더니, 자신들은 큐바에서 미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지금은 먹고 사느라 목수일을 하지만 그림도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림 보고싶다.  포스팅해 놓은 사이트가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큐바에서 일반인은 인터넷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놀랐다. 그가 pdf파일로 저장해 놓은 그림들을 보여줬다. 1984년 영화가 연상되는 어두운 그림들이었다. 그는 자유없이 살아야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암울한 현실을 들려주며 그림도 얼마나 조심해서 그려야 하는지, 이에 항거하는 자신의 메시지를 매우 모호한 형태로 약간만 드러나게 그려야 한다고 했다. 그림이 그냥 사물의 카피가 아니라 뭔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걸 다시한번 생각해 봤다.  

에드가 리카르도(윗 사진에서 왼쪽)의 작품들

벽을 커트해서 안에다 나무를 대어 든든한 지지대를 만들고, 보다 단단한 석고보드를 대고 텍스춰와 페인팅을 말끔하게한 후 브래킷을 박고 커튼봉을 올리고 커튼들을 달아 일을 마쳤다.  마음에 들어 다른 일의 견적을 부탁하고 보냈다. 놀랍게도 그들은 우리집에서 몇 블럭 안 떨어진 가까운 곳에 산다고 했다.

덕분에 미뤄왔던 쉬어커튼을 빨고 유리창과 창틀도 청소했다. 사다리를 들여온 김에 다른 방의 커튼들도 다 내려서 욕조에 넣고 빨 계획이다. 적을 사랑하라 했는데, 적도 아닌 사람들을 경계하고 의심한 나의 좁은 마음도 반성하며 같이 좀 씻어야 겠다.  그들과의 만남이 기뻤고 앞으로의 만남이 기대된다. 

This entry was posted in 그림, 수필, 신앙. Bookmark the permalink.